이 아이들이 다 너의 아이냐?

 

1973년에 나는 아내와 2살 된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 때는 대한민국이 너무 가난하여 이민 가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100을 가져가게 하였다. 이민 생활의 처음에는 많은 고생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노동일을 해본 적이 없으나 처음 이민 와서는 완전히 노동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민 온 것은 미국의 노동자로서 미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1973년 말에 기름 파동으로 그것마저 못 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미국에 의지 할 사람도 또 돈을 빌릴 사람도 없었으며 한국에 돈을 부탁 할 수도 없고 부탁한다 해도 한국에서는 미국에 보낼 돈도 없거니와 보내는 방법도 없을 때이다. 그 당시 미국에 전화를 하려면 전신 전화국에 찾아가서 전화번호를 주면 한 시간 혹은 2-3시간 후에 전화가 연결 되었다고 하면서 전화 하는 통속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였다. 미국까지 왔으나 직장이 없으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갈 수도 없고 그 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다.(나눔에서 “하나님은 피 할 길을 주신다.” 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1974년경에 주일 날 교회에 갈 때에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내 차에 태우고 한 10 마일 정도 되는 교회에 갔다. 나는 그 때 크라이슬라 큰 고물 승용차를 한 대 사서 타고 다니면서 교회에 가는 일요일에는 내 차에 16명을(6명이 타면 가득 태우는 차) 태웠다. 신호등이 있어 네거리에 섰다가 교통순경에게 걸렸다. 교통순경이 말하기를 “ 이 아이들이 다 너의 아이냐?”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이 태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교회에 간다고 하니 교회의 버스로 아이를 태우지 왜 너의 승용차에 이렇게 많이 태우느냐? 이것은 교통 위반이다. 이번에는 보내 주지만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1976년 10월부터 1978년 7월까지 나는 워싱톤 어느 교회에서 청년부 지도 집사로 섬기고 있었다. 그 당시 한인 고등학교 학생과 대학생들 중에는 자기 차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밴 추력 15인승 중 고 차를 한 대 구입하여 의자에 앉으면 15명 밖에 탈 수 없음으로 의자를 다 치우고 청년들로 차를 타고 서서 교회에 가게 하면 30명에서 40명을 태울 수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이 하여 한 이 년 가까이 청년들을 보통 30명 이상씩 태워서 매주 교회에 다닐 뿐 아니라 북 버지니아에서 부흥회를 하면 금요일과 토요일 또 일요일 저녁까지 태우고 다녔다. 그것이 미국 교통법에 불 법 인줄도 모르고 메릴랜드에서 버지니아까지 하이웨이로 달렸던 것이다. 매주 일요일에는 보통 청년들을 태워 교회에 가고 또 교회의 모든 행사가 끝나면 집에까지 태워다 주는 것이 100마일이 넘었다. 한국 거리로 말하면 하루에 400리를 운전하며 다닌 것이 된다. 차를 타면 청년들은 함께 어울려 찬송을 부르기 시작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은혜 받은 이야기며 또 기도하다가 받은 은혜며 각자 돌아가며 자기 간증을 한다. 밴 추력 안에는 뜨거운 영적 열기로 부흥회가 시작된다. 그렇게 하기를 두 세 시간이 지나면 차 안은 다소 조용해진다. 그러면 어떤 청년들은 나에게 개인 신앙상담도 차 안에서 한다. 그래서 신학교에 오기 전에 워싱톤에서는 버스 사역(Ministry) 은 내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안다. 큰 교회에서 교육 목사님께서 버스 사역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오기도 하였으며 청년들은 버스 안에서 활동을 매우 사모하였다.

청년 사역을 한 이년 이상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달라스로 신학공부를 하기 위하여 와서 공부를 마치고 다시 워싱톤으로 돌아가리라 계획하였다. 그러나 달라스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한 교회에서 25년 담임 목회를 하다가 조기 은퇴를 하였다. 달라스에 온지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이제는 전 세계에 다니며 현지 목회자 훈련 하는 선교 사역 감당하고 있다.